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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林, 이것이 禪이다~

출처: http://cafe.daum.net/golim

 

화두10: 소산의 법신변사와 법신향상사

 

소산이 상당하였다.

이 병승이 함통년 이전에는 법신의 변사를 알았고 함통년 이후에는 법신의 향상사를 알았다.”

운문이 소산에게 물었다.

무엇이 법신의 변사(邊事변두리의 일)입니까?”

고장(枯樁마른 말뚝)이다.”

다시 물었다.

무엇이 법신의 향상사(向上事)입니까?”

고장(枯樁마른 말뚝)이 아니다.”

운문이 물었다.

학인이 도리를 말해 봐도 되겠습니까?”해보라.”

고장(枯樁마른 말뚝)이 어찌 법신의 변사를 밝힌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고장(枯樁마른 말뚝)이 아님이 어찌 법신의 향상사를 밝힌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법신은 오히려 일체를 포용하지 않습니까?”

어찌 포용하지 않으리오.”

운문이 정병(淨瓶)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병도 법신을 갖추고 있겠습니까?”

도려는 정병(淨瓶물병)의 변사를 향해 (이 일을찾지 마라.”

운문이 곧 절을 하였다.

疏山上堂曰病僧咸通年前會得法身邊事咸通年後會得法身向上事雲門出問如何是法身邊事師曰枯樁曰如何是法身向上事師曰非枯樁曰還許某甲說道理也無師曰許曰枯樁豈不是明法身邊事師曰是曰非枯樁豈不是明法身向上事師曰是曰祇如法身還該一切也無師曰法身周遍豈得不該門指淨瓶曰祇如淨瓶還該法身麼師曰闍黎莫向淨瓶邊覓門便禮拜

화두를 살피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먼저 글자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예컨대 법신의 변사(邊事변두리의 일)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무엇을 법신변사라고 하는가여기서는 법신이라는 말을 알아야 하고 변사라는 말을 이해야 하는 것이다무엇을 법신(法身)이라고 하는가사전적으로는 부처의 참된 몸을 가리킨다이는 곧 成就莊嚴一切之功德法故言法身인 것이다즉 일체의 공덕법을 장엄함을 성취하기에 법신이라고 말한다여기에서 공덕이란 복덕과는 구분이 된다.복덕이란 선()을 행함으로 얻는 이익을 말한다예컨대 십악법(十惡法)을 멀리하고 십선법(十善法)을 즐겨 닦음으로 인간계에서 복을 누리고 천상계에 태어나는 복을 얻는 것과 같다복이란 곧 선의 과보인 것이다공덕(功德또한 마찬가지이다이는 곧 거친 번뇌미세한 번뇌를 없애며 부처의 참 성품에 다가가 부처의 지혜를 얻는 것을 말한다승만경보굴(勝鬘經寶窟)이라는 책에서는 악이 다함을 공()이라고 하고 선이 충만함을 덕()이라고 하였다또한 덕이란 (좋은 결과를얻는 것을 말한다공을 닦아 얻음을 곧 공덕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법신이란 이와 같은 공덕을 원만하게 성취한 몸을 가리킨다원만하다는 것은 선을 쌓은 공덕이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변사(邊事변두리의 일)라는 것은 어떤 것의 단서실마리이에 관련한 주변적인 일을 가리킨다예컨대 담장 너머의 뿔이 보이면 곧 소라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뿔이라는 작은 단서가 곧 변사가 되고 소 자체는 법신이 되는 것이다.

당시에 운문스님이 무엇이 법신입니까?’라고 묻지 않고 무엇이 법신변사입니까?’라고 물은 것은 법신 자체는 말로 할 수도 없고 드러내어 전체를 그대로 보여줄 수도 없다는 것을 기본전체로 하기에 이처럼 물을 줄 알았던 것이다.

고장(枯樁마른 말뚝)을 잘 살필 수 있어야 법신변사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어째서 법신을 가리키는 실마리를 물었는데마른 말뚝이라고 했을까참고로 소산광인선사는 20여년 동안 토하는 병을 앓으면서 수행을 한 분이다살피건대 이 병이 생긴 것은 곧 바른 안목을 갖춘 선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비방한 것에서 비롯하였다고 볼 수 있다저 함통년에 이르기까지 각고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선의 화두를 참구하였다참으로 눈물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여기에서 정병(淨瓶)이란 곧 깨끗한 물을 담은 물병을 가리킨다예컨대 관세음보살도에서 관세음보살 옆에 버들가지를 꽂은 물병이 곧 정병인 것이다.

저 소산선사는 끝에서 말하였다.

도려는 정병(淨瓶물병)의 변사를 향해 (이 일을찾지 마라.”

여기에서 도려(闍黎)는 곧 바른 수행으로 모범이 될 만한 자를 가리킨다이는 곧 제자에게 성인의 가르침을 전하고 바르게 훈계하는 스승을 가리킨다.

따라서 소산선사가 당시의 운문스님을 그렇게 부른 것은 통상적인 호칭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질문을 보고서 사람을 척 알아봤다는 의미도 되겠다왜냐하면 묻는다는 것은 반드시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산선사는 정병의 변사에 찾지 말라고 했는데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인가이 화두를 참구하는데이것을 꿰뚫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다이것을 바르게 꿰뚫을 수 있어야 비로소 법신변사를 다시 거론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운문스님이 절을 했는데그 절의 의미는 어떤 의미일까?저 소산선사가 마지막에서 한 뜻을 알았기에 절을 한 것인가아니면 전적으로 수긍하지 않았음에도 절을 한 것인가이 절의 의미를 살필 수 있어야 비로소 소산선사와 잔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후에 운문스님은 옛 사람들의 화두를 깊이 꿰뚫고서 마침내 산문(山門)을 열어 제치고 법석에 올랐다.

 

한번은 한 스님이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법신향상사(法身向上事법신에서 위로 향하는 일)입니까?”

운문이 말했다.

향상을 그대에게 말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법신을 어떻게 알았는가?”

화상의 거울()을 청합니다.”

거울이라면 그만두고 법신을 어떻게 알았는가?”

이와 같고 이와 같습니다.”그것은 긴 탁자 상에서 배운 것이다나는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법신은 오히려 밥을 먹을 줄을 아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雲門因僧問如何是法身向上事師曰向上與汝道即不難作麼生會法身曰請和尚鑒師曰鑒即且置作麼生會法身曰與麼與麼師曰這箇是長連床上學得底我且問你法身還解喫飯僧無對

 

향상사(向上事)란 현재의 자리에서 다시 위로 향해 나아가는 일을 말한다여기서 일이란 곧 앞으로 성취해야할풀어야할 과제숙제화두 쯤으로 볼 수 있다즉 현재로서는 마치지 못했기에 아직 그 일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일이 있다는 것은 곧 문제내지는 난관이 아직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 스님이 법신향상사(法身向上事)’를 물었을 때과연 알고서 물은 것인가스스로는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지도 모른 채 그저 남들이 하는 말을 따라서 물은 것일까어찌 선사라면 이것을 점검해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운문선사는 말한다.향상을 그대에게 말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법신을 어떻게 알았는가?”

그는 지금 법신향상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저 스님이라면 이것은 결코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여기에서 벌써 둘 사이에는 엇갈림이 생기는 것이다.

운문선사는 곧장 물었다. “법신향상사를 묻는다는 것은 법신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만이 가능한 것이다그렇다면 어디 법신에 대해서 자신이 안다는 증거를 보여봐라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그대의 질문은 허망한 질문이며 스스로 아는 척 남을 현혹하는 일이 될 뿐이다.”

그는 말했다. “화상의 거울()을 청합니다.”

그는 말하고 있다.

저 부처의 대원경지(大圓鏡智)야 말로 나의 참 법신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운문선사는 그것을 긍정치 않는다.

거울이라면 그만두고 법신을 어떻게 알았는가?”

이제 저 스님은 스스로를 의심하거나 선사를 의심할 것이다자신이 옳다면 선사가 옳지 않고 선사가 옳다면 자신이 옳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운문선사는 이런 말을 했을까단순히 상대의 입을 봉하게 하기 위해서 속이는 말을 한 것일까?그렇게 알아서는 크게 잘못 안 것이다반드시 자세히 살피고 살펴야 할 일이다그렇다면 운문선사가 이렇게 말한 뜻이 결국 어디에 있겠는가이것 또한 관문이다.

이에 이 스님은 여기에 다시 보충설명을 한다.

이와 같고 이와 같습니다.”

저 스님은 말하고 있다. “여여(如如)이고 진여(眞如)가 곧 법신입니다.”

그러나 운문선사는 또다시 이 스님의 혀를 빼앗는다.

그것은 긴 탁자 상에서 배운 것이다나는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법신은 오히려 밥을 먹을 줄을 아는가?”

그대의 그러한 말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가그대가 정말 스스로 깨닫고서 그런 말을 하는가아니면 누구에게 그런 말을 듣고서 충분히 소화도 되기 전에 미리 토한 것인가?

운문선사는 아마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대의 그런 말은 글자를 통해 스스로가 구축한 깨달음에 대한 이미지일 뿐이다그대는 오랜 시간 동안 불경을 보고 또 보면서 마침내 종이위에 허공을 그렸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진짜 허공 아니기에 새 한 마리 가로질러 날아가지 못할 것이다자 이제 나는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이전의 대답은 잊으라지금까지 알고 이해한 바를 잠시 잊고서 나의 물음에 대답해보라.” 그리고는 전광석화와 같은 말을 토했다.

법신은 오히려 밥을 먹을 줄을 아는가(法身還解喫飯麼)?”

 

벽암록에 평창을 붙인 원오선사는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평하였다.

운문은 가히 농부의 소를 몰고 가고 주린 자의 밥을 빼앗았다고 하겠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 “비록 그렇다고 해도 그저 법신 변사(邊事주변의 일)를 밝혔을 뿐아직 법신 향상사(向上事법신에서 위로 향하는 일)를 밝히지는 않았다자 무엇이 법신 향상사인가?”

이상의 구절을 꿰뚫는다면 저 운문선사의 뜻도 분명할 것이다.

만약 이것으로 흡족하지 못하다면 옛 사람의 구절을 더 보태보겠다.

고국에서는 소식이 없고 고향에서는 왕래가 끊겼다.”

 

끝으로 이 촌중 취산이 한 글자 적는다.

 

법신은 본래 숫자에 떨어지지 않는데

무엇을 법신이라고 하는가?

법신의 향상사이여

축융봉에는 만년 소나무이다.

 

고림선원에서 취산 합장

 

출처: http://cafe.daum.net/golimwon/oVo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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