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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林, 이것이 禪이다~

화두14: 임제의 빈주(賓主)

취산 2019.06.12 10:51 조회 수 : 27

출처: http://cafe.daum.net/golim

 

화두14: 임제의 빈주(賓主)

 

임제가 상당하는 차에 (마침양당의 수좌가 서로 보자마자 동시에 악하고 할을 하였다.

한 스님이 선사에게 물었다.

오히려 (여기에빈과 주가 있겠습니까?”

빈과 주가 역연(歷然분명)하다.”

선사가 대중을 부르며 말했다.

임제의 빈주의 구절을 알고자 한다면 양당의 두 수좌에게 물으라.”

臨濟上堂次兩堂首座相見同時下喝僧問師還有賓主也無師曰賓主歷然師召眾曰

要會臨濟賓主句問取堂中二首座

 

예로부터 임제종에서는 네 종류의 주인과 손님의 도리로써 지극한 이치에 계합함을 밝혀왔다이것을 사빈주(四賓主)’라고 부른다임제종에서는 무엇을 가리켜 손님이라고 하고 무엇을 가리켜 주인이라고 했을까?

여기에서 주인은 곧 스승을 가리키고 손님은 곧 제자를 가리킨다따라서 스승의 콧구멍(鼻孔)을 갖춘 자를 주인 가운데 주인이라고 부른다반대로 손님이 스승의 콧구멍을 갖춘 것을 객 가운데 주인이라고 부른다스승이 제대로 콧구멍을 갖추지 못한 것을 주인 가운데 객이라고 부른다스승과 제자 둘 다 콧구멍이 없는 것을 객 가운데 객이라고 부른다여기에서 콧구멍(鼻孔)이란 곧 호흡하는 때에 기운이 출입하는 통로를 말한다참고로 조동종에서도 또한 사빈주가 있는데다소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여기에서 빈주란 곧 체와 용의 의미로 쓰인다.

 

이것을 임제종의 풍혈연소선사는 주중주(主中主), 빈중주(賓中主), 주중빈(主中賓), 빈중빈(賓中賓)’이라고 불렀다.

또한 이것은 이렇게도 표현하였으니곧 주인이 주인을 보다(主看主), 손님이 주인을 보다(賓看主), 주인이 손님을 보다(主看賓), 손님이 손님을 보다(賓看賓).’라고도 한다()이란 곧 상대를 간파해서 본다는 뜻이다예컨대 손님이 주인을 본다고 하면 곧 제자는 오히려 바른 안목을 보였지만 스승이 도리어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무엇이 바른 안목이고 콧구멍인가?

당시에 임제선사는 이 사빈주의 도리를 빈번하게 거론하였다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들어 이와 같이 물었던 것이다.

 

자 다시 내용의 글자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하루는 임제선사께서 상당하는데여기서 상당(上堂)이란 당으로 올라왔다는 것이다무엇 때문이겠는가여기에서 당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첫째는 법당(法堂)의 의미이고 둘째는 승당(僧堂)의 의미이다.

당시에 임제선사는 법당에 올라 법문을 하려는 참이었다바로 그때 양당의 두 수좌가 서로를 보자마자 곧장 악하고 할을 하였다양당에서 당이란 곧 승당을 가리킨다스님들이 머물며 참선을 하고잠자고공양을 하는 공간인 것이다또한 양당을 흔히 동당과 서당을 합해서 부른다두 개의 승당이 동쪽과 서쪽으로 서로 마주해 위치하기 때문이다양당의 수좌(兩堂首座)란 양당을 각각 대표하는 스님을 가리킨다그렇기 때문에 맨 위의 머리에 해당하는 자리(首座)’라고 표현하는 것이다이 자리는 곧 오랜 법랍과 연륜을 갖춘 자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득 이 두 스님이 서로를 보자마자 동시에 악하고 할을 하였다당시에 임제선사는 상당하여 법석에 막 앉으려는 순간이거나 자리에 앉은 상황이라고 가상해볼 수 있겠다그러한 순간에 두 스님이 문득 서로를 보자마자 할을 한 것이다()이란 곧 상대를 꾸짖고 질타하는 소리를 가리킨다흔히 배우는 자의 칠통(漆桶)을 타파하기 위해 선의 세계에서는 자주 쓰이고 있다이 할의 최초의 유래는 저 마조선사께서 백장스님에게 한 차례 할()을 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당시에 백장스님은 삼일을 귀가 멍하고 눈이 아득했다고 한다.

저 두 수좌는 무엇 때문에 서로를 보자마자 할을 했을까다시 말하면 무슨 허물을 보았기에 질타한 것일까이는 곧 틀림없이 동쪽 수좌는 서쪽 수좌의 허물을 보았기에 할을 했을 것이며 서쪽 수좌는 동쪽 수좌의 허물을 보았기에 할을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살피는 자라면 이 둘의 허물을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 스님이 임제선사에게 물은 것이다.

오히려 (여기에빈과 주가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거의 동시에 할을 했기에 빈과 주를 가려내기가 몹시도 험난할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인터넷에서 어떤 자는 말하기를, ‘빈주구는 동시에 할을 했으니 동시에 빈이 되고 동시에 주가 되나말에 떨어지면 안 된다불교에서는 빈주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고빈주가 없는 자리에 들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이 분이 말하는 빈주는 곧 반쪽 자리 빈주임에 틀림없다왜냐하면 결국에는 빈주가 없는 자리에 들기 위함이라고 했기 때문이다따라서 이것은 주인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다앞에서 주인이란 곧 스승의 콧구멍을 갖춘 자를 말한다고 분명하게 언급하였다여기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지어서 빈과 주를 살핀다면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임제선사는 말했다.

빈과 주가 역연(歷然분명)하다.”

 

이 두 수좌가 동시에 할을 한 이 자리는 빈과 주가 분명하다그러니 빈주의 도리를 알고자 한다면 저 두 수좌에게 물으라는 것이다.

임제의 빈주의 구절을 알고자 한다면 양당의 두 수좌에게 물으라.”

임제의 빈주의 구절을 알고자 한다면이라고 하는 것은 곧 평소에 임제선사께서는 이 빈주에 대해 자주 법문하였으며 모두는 이 도리에 대해 항상 갈증을 느끼기에 묻고 또 물었다는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저 사빈주를 자세히 살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스님이 풍혈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손님 가운데 주인입니까?”저자에 들어가서 두 눈이 멀었다.”

무엇이 주인 가운데 손님입니까?”

어가(御駕)를 돌리니 해와 달이 새롭다.”

무엇이 손님 가운데 손님입니까?”

눈썹을 모우고 흰 구름 위에 앉았다.”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삼척의 검을 갈고서 평평치 못한 사람을 베려고 기다린다.”

如何是賓中主師云入市雙瞳瞽云如何是主中賓師云回鑾兩曜新云如何是賓中賓師云攢眉看白雲云如何是主中主師云磨礱三尺劒待斬不平人。 

 

풍혈선사께서 대답한 뜻을 정확하게 알아차려야 비로소 빈과 주의 의미를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고 하겠다글자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예컨대 무엇이 입시(入市즉 저자에 들어간다는 뜻인가만약 이 사빈주의 도리를 꿰뚫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모든 의심을 끊고서 옛 사람을 친근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이 사빈주에 대해서 묻고 또 묻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에 임제선사께서 답변한 것에 대해 후대에 가서 다시 말이 있었으니참으로 날카롭고 비범했다고 하겠다.

 

운암 열선사는 말했다.

당시에 이 스님이 빈주가 역력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자마자 곧바로 선상(禪床)을 뒤엎었어야 했다설령 임제에게 기발한 기틀과 묘책이 있었다고 해도 틀림없이 두 차례 나뒹굴고 세 차례 나뒹굴렀으리라.”

雲菴悅云當時者僧見道賓主歷然便好與掀倒禪床直饒臨濟別運機籌也須落二落三

 

공평함으로 불공평함에 나아가는

왕법에는 본래 친함(과 疏遠)이 없다.

임제가 비록 눈이 밝았어도

역시 황룡(黃龍)의 정(정미정수)이다. (경산 고)

以平報不平王法本無親

臨濟雖明眼也是黃龍精(徑山杲)

 

여기에 대해 한 구절을 적는다.

 

몸을 돌린 사자는 몹시도 사납고

눈 속에 근육이 없어서는 일생이 가난하다.

살리고 죽이는 검이 손안에 있었는데

누가 알았으리오!

이광장군의 한 화살촉이 두 마리 기러기를 떨어뜨릴 줄을.

 

고림선원에서 취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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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빈주 #풍혈선사 #임제선사 #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