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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林, 이것이 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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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파(俞道婆)의 큰 깨달음

 

금릉 유도파(俞道婆)는 시장에서 떡장수를 하였다. 낭야 기(瑯琊起)화상을 참례하였는데, 임제의 무위진인 화두를 들려주었다.

하루는 (시장에서) ‘연화(蓮華)의 노래’를 들었다.

‘(경천(涇川)으로 시집온 용궁의 공주를 만난) 서생 류의(柳毅)가 (공주의 고향 동정호의 용궁에) 서신(書信)을 전하지 않았다면 무슨 인연으로 동청호에 이르리오.’라고 하였다.

이것을 듣다가 홀연히 대오하고서는 떡판을 땅에 던졌다.

(옆에 있던) 부군이 말했다.

“미쳤는가?”

노파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대의 경계가 아니다.”

낭야를 찾아갔는데, 낭야는 그를 보자 화두를 타파한 것을 알고서 물었다.

“무엇이 무위진인인가?”

노파가 말했다.

“무위의 사람이

육비삼두(六臂三頭)의 힘으로 눈을 부라리며

한 주먹으로 화산(華山)을 두 쪽 내서는

만년토록 흐르는 물이 봄을 알지 않는다.”

낭야는 인가하였다.金陵俞道婆。市油餈為業。參瑯琊起和尚。起以臨濟無位真人話示之。一日聞丐者唱蓮華樂云。不因柳毅傳書信。何緣得到洞庭湖。忽大悟。以餈盤投地。夫曰。你顛邪。婆掌曰。非汝境界。往見瑯琊。琊望之知其造詣。問那箇是無位真人。婆應聲曰。有一無位人。六臂三頭努力瞋。一擘華山分兩路。萬年流水不知春。琊印可之。

 

유도파(俞道婆)의 일화가 많이 회자되지만 여기에는 다소 오해가 있는 듯하다. 어떤 이는 당시 유도파가 낭야 각화상을 참례했다고 하는데, 낭야 기(瑯琊起)화상이 맞다고 하겠다. 한편 한 때 덕산선사가 금강경소초를 짊어지고서 남방으로 가는 중에 떡 파는 노파를 만나는 일화를 두고서 이 유도파가 그 노파라고 여기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겠다. 즉 덕산선감선사가 아니라 덕산 태화상이다.

 

이 유도파의 깨달음의 인연을 거론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저 서생 류의(柳毅)에 관한 일화를 알고 있어야 한다. 당시에 유도 노파 역시 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마치 모두가 아는 심청전과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많은 선화자들이 유도파 화두를 거론하면서도 이 류의전(柳毅傳)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아마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어서 자료를 쉽게 접하지 못해서이리라. 아니면 화두에 간과한 것이 있으리라.

 

류의전(柳毅傳)에 대한 자료를 대충 정리하면 요지는 이러하다.

 

당나라 시대 감숙성(甘肅省) 롱서(隴西) 사람 이조위(李朝威)가 지은 작품 가운데 하나로 ‘동정영인전(洞庭靈姻傳)’이라고도 한다. 이 유의전은 인신통혼(人神通婚) 즉 사람과 신이 결혼하는 이야기다.

동정호(洞庭湖)의 용궁(龍宮)에 사는 용왕(龍王) 동정군(洞庭君)의 셋째공주는 멀리 경천(涇川)으로 시집을 가지만 남편 경양군(涇陽君)과 시어머니의 모진 학대를 받으며 결국에는 양(羊)몰이 신세로 전락한다. 마침 그때 서생 류의(柳毅)는 장안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 가는 중이었는데, 도중에 한 겨울 눈밭(冰天雪地)에서 양을 치고 있는 그녀를 만난다. 마침내 그 사연을 듣고서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용녀의 고향에 서신을 전해주기로 약속을 하고 길을 떠난다. 마침내 동정호의 용궁에 도착하여 서신을 전해 주게 되는데, 이를 전해들은 용왕의 아우 전당군(錢塘君)은 격노하여 단숨에 달려가서 조카사위를 죽여 버린다. 그리고는 그녀를 데리고 용궁으로 돌아와서는 유의와 결합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유의는 전당군이 강압적으로 결혼을 성사시키려고 하는 것에 대해 불만스럽기도 하고 본래 마음도 없었으므로 거절한다. 그러나 용녀는 이미 유의에 대한 애정이 깊어져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하는데, 결국에는 두 사람이 결혼하여 하늘에 올라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저 서생 류의(柳毅)의 당시 상황과 삶을 대하는 자세이다. 당시에 류의(柳毅)는 장안으로 과거를 보려고 가는 중이었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일이다. 오늘날에 비추면 마치 오래도록 사법고시를 준비하고서 시험을 보려 가는 도중에 한 사람의 피치 못할 사정을 듣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게다가 약속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어떤 사람은 잽싸게 계산을 해보고서 어쩌면 이것은 왕의 신하가 되고 관리가 되는 것보다 이득이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 류의(柳毅)는 용왕의 셋째 딸과의 결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왜 달가워하지 않았을까?

 

세상은 모두 눈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에는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지만 어떤 때에는 의리와 명분, 소신, 신념 때문에 움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들 역시 이익을 위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멀고 가까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이는 크다. 먼 이익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순서와 배려에 여유가 있지만 가까운 이익에 급급해서는 실수가 많고 경솔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를 닦는 자에게 있어서 저 류의(柳毅)가 과거를 포기하고 눈밭에서 양을 치는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귀함을 버리고 천함에 나아가겠다는 자기선언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곧 절친한 두 고향친구가 항상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에 비추어볼 수 있다.

한 사람은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성공을 해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과 존경을 받지만 항상 고향에 있을 친구를 생각한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그 친구를 찾아보지만 이미 그 역시 고향을 떠난 뒤라서 더욱 그리움에 사무친다. 다른 한 사람은 어떤 일로 고향사람들을 화나게 해서 결국 쫓겨나 타향에서 가족을 이루며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항상 친구를 생각한다.

저 서생 류의(柳毅)가 장안으로 과거를 보려가는 것은 성공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만약 과거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곧 첫 번째 친구가 가는 길에서 몸을 돌려서 두 번째 친구가 가는 외로운 일생행로를 밟는 것이 될 것이다.

세상에 그 누가 스스로 가난을 자처하고 옛 사람의 도를 따르려고 할 것인가? 그저 첫 번째 친구의 부귀를 한 몸에 만끽하면서 가끔 고향친구를 생각하는 정도에 그치기 않겠는가?

이 이야기는 도를 닦는 일과 매우 닮아있다.

 

산을 오르는 자는 다시 산을 내려와야 집에 이른다. 그러나 어떤 자는 처음부터 산에 오르지 않는다. 다만 삶속에서 천하게 살면서 오직 사람 사이에 머물 뿐이다.

저 두 친구가 결국에는 만나서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도모하는 것처럼 결국 산을 오르든 오르지 않든 둘 다 집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편히 쉴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정황을 저 유도파는 한 순간에 깨달았다.

당시 유도파의 부부는 시장에서 떡장사를 하고 있었다. 시장이 서면 당연히 약장수도 있고 노래하고 춤추는 창극도 벌어지게 마련이다. 바로 그때 낭낭한 목소리로 심청전을 읊조리듯 저 류의전(柳毅傳)을 노래하는 소리가 유도파의 귀에 와 닿았다.

그녀에게도 이미 익숙한 내용이지만 가만히 들었다.

바로 그때 구성진 가락으로 ‘서생 류의(柳毅)가 서신(書信)을 전하지 않았다면 무슨 인연으로 동청호에 이르리오.’라는 구절에서 팔만대장경을 뚫고 지나가는 송곳 끝을 보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떡판을 뒤엎었다.

어쩌면 그는 소리쳤을 것이다.“아! 내가 이날까지 사람에게 속았구나!”

 

처음 유도파가 낭야 기화상을 만났을 때, 기화상은 무엇 때문에 ‘임제의 무위진인’의 화두를 들려주었을까?

이것은 곧 당시 유도파의 공부를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저 서생 류의(柳毅)가 용궁에 전하는 편지내용을 아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낭야 기화상 역시 그것을 꿰뚫어보았기에 친절하게 ‘임제의 무위진인’ 화두를 일러주고 살피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유도파의 게송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유도파는 크게 깨닫고서 마침내 낭야 기화상을 다시 찾아간다.

냥야 기화상은 그가 오는 것을 보고서 즉각적으로 정황을 알아차렸다.

때문에 단적으로 물었다.

“무엇이 무위진인인가?”

이에 유도파는 노래하였다.

 

무위의 사람이여

육비삼두(六臂三頭)의 힘으로 눈을 부라리며

한 주먹으로 화산(華山)을 두 쪽 내서는

만년토록 흐르는 물이 봄을 알지 않는다.

有一無位人。六臂三頭努力瞋。一擘華山分兩路。萬年流水不知春。

 

낭야는 인가하였다.

琊印可之。

 

이 구절을 살필 수 있다면 저 유도파가 처음 낭야 기화상을 찾아왔을 때, 어떤 공부를 짓고 있는지가 매우 자명하다. 만약 그러한 경계에 있지 않았다면 어찌 ‘육비삼두(六臂三頭)’, 내지는 ‘화산(華山)’를 거론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저 육비삼두(六臂三頭)가 눈을 부라리며 화상을 두 쪽을 냈을까? 참고로 육비삼두(六臂三頭)란 흔히 괴력을 가진 신인(神人)을 일컫는다.

마지막 구절은 이 게송의 압권으로 초절하다.

 

만년류수부지춘(萬年流水不知春)

만년토록 흐르는 물은 봄을 알지 않는다.

 

번역 상으로 ‘부지춘(不知春)’을 ‘봄을 알지 못한다.’ 내지는 ‘봄을 알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봄을 알지 못한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곧 유도파가 아직 낭야 기 화상을 만나기 이전의 일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봄을 알지 않는다’고 하면 어떠한가?

여기에 대해서는 나 취산은 이렇게 노래하겠다.

 

서신의 뜻은 오직 스스로만이 알 뿐인데

편의를 얻어서는 편의에 떨어진다.

육비삼두가 화산을 부숨이여

은혜가 여덟 근이고 원한이 반근이다.

만년토록 흐르는 물이 봄을 알지 않음이여

여사미거마사도래(驢事未去馬事到來)이다.

 

취산 쓰다. 201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