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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林, 이것이 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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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치생모(板齒生毛)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판치생모이다.”

趙州因僧問。如何是祖師西來意。師曰。板齒生毛。 

 

취산: 판치생모여, 앞니에 털이 났다.

 

※판치서(板齒犀) - 판치의 코뿔소에게는 이마에 하나의 뿔이 있는데, 길이가 2미터쯤이다. 板齒犀在額骨上具有一隻2公尺長的角,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이빨이 하나씩 빠지게 마련이다. 여기에 어찌 선의 도리가 없으리오.

선에는 이빨에 대한 일화들이 있다.

저 ‘덕산탁발화’의 화두에 대해서 설두선사는 저 덕산을 평하기를 ‘무치대충(無齒大蟲)’이라고 하였다. 무치(無齒)라는 것은 곧 이빨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대충(大蟲)은 곧 큰 벌레라는 말로 저 호랑이의 얼룩무늬가 마치 배추벌레의 얼룩무늬와 같음에서 그 어원을 유추해볼 수 있겠다. 다만 크기가 다를 뿐이다. 벽암록에는 저 달마를 ‘沒板齒老漢’ 즉 ‘판치가 없는 늙은이’라는 표현하는 구절이 나온다.

그런데 저 조주에게는 이 ‘판치생모’가 있다. 이는 곧 ‘판치에 털이 났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은 저 ‘판치에 난 털’이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한자에는 ‘판치서(板齒犀)’라는 단어가 있는데, 곧 ‘판치를 가진 코뿔소’를 의미한다. 코뿔소는 코뼈에 2미터에 달하는 큰 뿔이 박혀있다. 이 뿔을 판치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저 ‘앞니’ 라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오히려 저 코뿔소의 판치가 판치생모의 화두를 더욱 돕는다.

 

조주선사는 무슨 뜻에서 판치생모(板齒生毛)를 말했을까?

이 화두를 알려면 무엇보다도 판치(板齒)에 대해서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판치를 모른다면, 어찌 거기에서 다시 털이 나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의 전강스님은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듣고 누군가가 왜곡해서는 ‘조주의 무자와 판치생모는 결국 같은 뜻이 아니겠는가?’라고 여길 수도 있다. 이것이 참으로 옛 사람들이 염려하는 바이다.

조주의 무자는 선종의 바른 안목을 가려내는 관문과도 같다고 하겠다. 그러나 저 판치생모는 그것과는 무게감이 다르다. 그저 조주선사에게는 오직 하나의 뜻이 있을 뿐이라고 해서는 마치 오리와 닭은 그저 조류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리라. 가려내지 못하면 결국 진흙과 티끌을 가리지 않고 입안에 넣게 될 것이다. 어찌 옳겠는가?

 

 

판치생모를 참구하려면 먼저 ‘판치에 아직 털이 나지 않는 때’와 ‘털이 난 때’를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것을 가려낼 수 있다면 틀림없이 ‘유년무덕(有年無德)’이라는 말도 알아들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유년무덕(有年無德)을 알아들었다고 해도 전과신라(箭過新羅)에는 미치지 못한다.

무엇을 전과신라(箭過新羅)라고 하는가?

번역을 하면 ‘화살이 신라로 지나간다.’는 말이다. 이것은 곧 화살이 당나라에서 날아올라 바다를 건너서 신라로 날아간다는 말이다.

유년무덕(有年無德)이란 곧 ‘나이는 있어도 덕은 없다’는 뜻이다. 나이가 있다는 것은 곧 연로하다는 것이다. 이미 선을 참구한지 오래되어서 몹시도 연로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렇게만 알아서는 안 된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결국 무슨 말인가?

단지 그 한 분야에 오래도록 종사했다는 것만으로는 나이를 먹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반드시 그만한 안목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참으로 그만한 나이를 먹었다면 저 덕산의 방망이에 역시 동참할 것이다.

 

덕산은 스님이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방망이로 후려쳐서 쫓아냈다.

덕산은 한 번은 법상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물음에 대답하지 않겠다.”

 

옛 사람은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평하였다.

“사람이 가난하면 지혜가 짧다.”

 

저 덕산을 안다면 판치(板齒)를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마치 입이 있어도 혀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저 조주에게는 부드럽고 유연한 혀가 있었다.

저 판치(板齒)와 무치(無齒) 즉 ‘이빨이 없다’고 한 글자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글자가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어도 여기에는 전혀 모순이 없다.

 

한번은 마조대사께서 몸이 편찮았는데, 원주가 문안을 하며 물었다.

“화상께서는 요즘 존체가 어떠하십니까?”

마조가 말했다.

“일면불! 월면불!”

舉。馬祖不安。院主問。和尚近日尊候如何。祖云。日面佛。月面佛。

 

여기에 대해서 박산 무이선사는 코멘트하였다.

“원주가 간곡하게 물음에 마대사의 판치에서 털이 났다. 저 (마조)늙은이의 뜻을 알고자 하는가? 자식을 길러보아야 바야흐로 아비의 자비를 안다.” (박산무이선사광록)

拈云。院主殷勤致問。馬師板齒生毛。要識者老漢情謂麼。養子方知父慈。(無異禪師廣錄)

 

이런 구절이 있다.

“즉심즉불이여, 마대사의 판치에서 털이 났다. 비심비불이여, 마대사의 안광이 땅에 떨어졌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도 아님이여, (남전)왕노사가 상수래(相隨來)하였다.”

上堂。即心即佛。馬大師板齒生毛。非心非佛。馬大師眼光落地。不是心。不是佛。不是物。王老師相隨來也。

 

판치생모(板齒生毛)는 이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저 조주 무자화두는 전혀 다르다.

누군가가 참으로 조주선사의 석 잔의 차를 마실 수 있다면 능히 자호화상의 사나운 개를 지나서 두 존숙을 틀림없이 친견하리라.

 

판치에 털이 나지 않음이여

늙고 가난한데 지혜도 짧다.

판치에 털이 나는 것이여

누가 ‘마음이 곧 부처’라고 말했는가?

자식을 길러보아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

남전의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님이여

말 많은 자가 한 의 차를 마시고

생(生)과 사(死)에서 나와서는

유(有)와 무(無)를 건너지 않는다. (취산)

 

글: 취산


禪으로의 초대

글: 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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