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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林, 이것이 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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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스님의 육육삼십육을 살피다


주장자를 가로로 메고 사람을 돌아보지도 않고 곧바로 천봉우리 만봉우리로 들어간다.

현 한국 조계종의 종정이신 진제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
40년 전에 월내 묘관음사에서 향곡선사께서 산승에게 물으셨다.
“우두스님이 사조선사를 친견하기 이전에 백 가지의 새들이 꽃을 물어 온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에 산승이 답을 하기를,
“삼삼은 구입니다.”하니,
다시 향곡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럼 우두스님이 사조선사를 친견한 이후로 백 가지의 새들이 꽃을 물어 오지 아니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육육은 삼십육입니다.”
“그럼 필경에 일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렇게 향곡선사께서 물으심에, 산승이 답하기를,

주장자를 횡으로 메고 사람들은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천 봉과 만 봉 속으로 들어감입니다.
------------------

한국에서 이만한 안목을 얻는 자를 만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웃는 자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저 진제스님은 교의(敎意)와 조의(祖意)를 모조리 꿰뚫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저 ‘곧바로 천 봉과 만 봉 속으로 들어감입니다.’라고 한 구절을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천 봉우리, 만 봉우리 속으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거기가 어디인가?
일찍이 진제스님이 이렇게 말하였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주중주(主中主)입니까?”
이제 진제스님은 말했다.
“구중궁궐에 앉으니 일천부처님도 보기가 어려움이로다.”

이 일은 자세히 살펴야 한다. 엉성하게 사슴과 말을 혼동하고 관음과 미륵을 잘못 알아서는 전혀 어긋난다.
선(禪)에서는 예로부터 사빈주(四賓主)를 통해서 선의 바른 안목을 가려내기 위해서 매우 치열하였다. 무엇을 사빈주라고 하는가? 객중객, 객중주, 주중객, 주중주가 바로 이것이다.
나 취산은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송하겠다.

말을 사슴이라고 부르고
쇠 쓰레받기를 다리미로 쓰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빈중주를 주중빈으로 잘못 알아서는
끝내 은산철벽 속에 다시 철벽을 지으리라.

나 취산에게 만약 누가 주중주를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조주의 돌다리는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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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글 또한 진제스님의 이야기이다)
그 후 스님의 세수 33세이던 1967년 정미년(丁未年) 하안거 해제법회일에 월내 묘관음사 법당에서 향곡 선사께서 법문을 하시기 위해 상당(上堂)하시어 묵좌(默坐)하고 계시는데 스님이 나와 여쭈었습니다.
"불조(佛祖)께서 아신 곳을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을 선사님께서 일러 주십시오."
"구구는 팔십일이니라."
"그것은 불조께서 다 아신 곳입니다."
"육육은 삼십육이니라."
이에 스님이 아무 말 없이 예배드리고 물러가니, 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법상에서 내려오셨습니다.

다음 날 위의를 갖추고 다시 선사님을 찾아가 여쭙기를,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안목입니까?"
하니, 향곡 선사께서 답하셨습니다.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師姑元來女人做]"
그러자 스님이,
"오늘에야 비로소 선사님을 친견했습니다."
하니, 향곡 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관(關)!"
스님이 이렇게 답하자, 향곡 선사께서
"옳고,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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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산: 두 부자가 서로 하나의 곡조를 이루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곡조일까? ‘구구팔십일을 불조(佛祖)가 알았다’고 해서는 그저 엉성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눈먼 자라면 서시의 찡그린 얼굴도 매력으로 여기겠지만 눈 밝은 자라면 횡성수설하는 가운데에서도 옳고 그름을 저울질할 수 있으리라.  
진제스님의 ‘관(關)’ 자(字)가 어찌 주장자를 가로로 메고 천봉우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구중궁궐에 앉아서는 일천 부처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슷하기는 해도 옳다고는 할 수 없다.
듣지 못했는가?

한 스님이 광조선사에게 말했다.
“여래선은 곧 노형(老兄)이 알았다고 하겠으나 조사선은 아직 꿈에도 보지 못했다. 여래선과 조사선은 같겠는가? 다르겠는가?”
“일전과신라(一箭過新羅)이다.”
이 스님이 헤아리며 의논하려고 하자, 선사는 곧 악! 하였다.
(건중정국속등록)
問。如來禪即許老兄會。祖師禪未夢見在。未審如來禪與祖師禪。是同是別。師云。一箭過新羅。僧擬議。師便喝。(建中靖國續燈錄)

취산: 일전과신라(一箭過新羅)라고 했는데, 어떻게 번역해야 맞을까? 한 화살이 신라를 가로질러서 날아갔다는 것인가? 아니면 한 화살이 신라로 날아갔다는 것인가? 가려낼 수 있다면 빈주(賓主)를 살피는 눈 또한 밀밀하다고 하겠다.

한 스님이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북두에 몸을 감출 때에는 어떻습니까?”
“구구는 팔십일이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일이삼사오이다.”
問。北斗裏藏身時如何。曰。九九八十一。曰。會麼。曰。不會。曰。一二三四五。

취산:
양양이 뿔을 감추어서는
외도와 마군이 찾지 못하고
북두에 몸을 감추어서는
적축(赤軸)에서 더듬지 못한다.

한 스님이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향상일로입니까?”
“구구는 팔십일이다.”
問。如何是向上一路。 師云。九九八十一。

취산:
향상일로(向上一路)여
일천성인도 입을 떼기 어렵다.
구구는 팔십일이여
중양절에 국화향기는 높은 곳을 빌리지 않는다.

건(乾)선사가 파고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그대의 본래면목인가?”
“육육은 삼십육입니다.”
“아니다. 다시 말해봐라.”
“구구는 팔십일입니다.”
건이 한 차례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이것은 구구팔십일이며 다시 육육삼십육이다.”
이에 파고스님은 악! 하고는 곧장 나가버렸다.
스스로 옳다고 여기며 물러서지 않았는데, 다시 삼년이 지나고서야 (건선사의) 인가를 얻었다.
(순천취산운거명파고선사 - 오등전서)
乾問。如何是你本來面目。師曰。六六三十六。乾曰。不是更道。師曰。九九八十一。乾打一掌曰。這是九九八十一。還是六六三十六。師一喝便出。自是當機不讓。復侍三載。得蒙印可。
(順天房山雲居溟波古禪師 - 五燈全書)

취산:
육육삼십육이여
구구는 팔십일이여
무수히 창룡굴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찌 노주를 마주해 회심하리오.

이상의 구절들을 분명하게 하나로 꿰뚫을 수 있다면 어찌 옛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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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된나(?)찾기학교 2017.12.20 04:30
    여러공안들을 다루는 것보다 하나의 공안으로 질문을 하시는게 학인들이 탁마하는데 도움되지않겠소이까?
    여러공안을 다루더라도 말미에는 질문으로 마무리하셔야 답을 하여 탁마가 이어지지않겠소이까?
    질문: 육육은 삼십유콰 구구는 팔십일이란 진제선사의 대답이 주중주나 객진주나 객진객이나 주중객중 어디에 속한가요?

취모검

글: 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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