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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林, 이것이 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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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심즉불(即心即佛) 평상심(平常心)

마조대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음에 즉함이 곧 부처이다.”
馬祖因僧問如何是佛。師曰即心即佛。

저 즉심즉불(即心即佛), 즉심시불(即心是佛)의 어원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들을 보면 대략 이러하다.
1. 즉심시불(卽心是佛) - 인간은 본래부터 마음에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 인간의 마음 그 자체가 곧 부처라는 뜻. 평소의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라는 뜻. (시공 불교사전)
2. 즉심즉불(卽心卽佛) - 불교용어. 도를 깨달으면 내 마음이 부처이고 그 밖에는 부처가 없다는 말.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전)
3. 즉심시불(卽心是佛) - 대표적인 선어(禪語)의 하나. 마음이 곧 부처이며,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다는 뜻. 자기의 마음을 떠나서 따로 부처를 구할 수 없고, 마음이 곧 우주의 창조자이며, 마음을 찾아 깨치면 곧 부처가 된다는 말. 사람은 번뇌로 말미암아 마음이 더러워지나 본성은 불성(佛性)이어서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나 마찬가지임을 이르는 말이다. 즉심즉불ㆍ시심시불(是心是佛)이라고도 한다. (원불교대사전)

이것에 근거하여 어떤 자들은 곧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과 같다’고 선에서는 주장한다고 말한다.

취산: 즉심즉불(卽心卽佛), 평상심(平常心)이라고 했는데, 누구의 즉심즉불이고 누구의 평상심인가? 중생의 마음이고 중생의 평상심이라고 해야 하는가?  
즉심즉불(卽心卽佛)를 흔히 ‘마음이 곧 부처이다’라고 번역한다. 그렇다면 즉심(卽心)의 즉(卽) 자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단순히 허사(虛辭)란 말인가?
즉(卽)이란 ‘곧. 가까이하다. 자리에 나아가다.’의 의미가 있다. 예를 들면 ‘漢王卽皇帝位,尊王后曰皇后,太子曰皇太子,又尊太公爲太上皇。’라고 하였다. 즉 ‘한왕이 황제의 자리에 나아갔다. 황후를 황후라 칭하고 태자를 황태자, 또한 태공을 태상황이라고 칭하였다’는 것이다. 무엇을 황제의 자리(皇帝位)라고 하는가? 황제란 지극히 존칭함이다. 예로부터 천자 포휘씨, 신농씨를 황(皇)이라고 칭하였고 요와 순을 제(帝)라고 칭하였다. 皇帝,至尊之稱也。上古天子庖犧氏,神農氏稱皇。堯,舜稱帝。
따라서 ‘즉심즉불(卽心卽佛)’이란 곧 ‘마음에 즉함이 곧 부처이다.’ 내지는 ‘지금 당장의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무엇을 이 ‘마음’이라고 하고 ‘평상심’이라고 해야 할까? 평상시의 희로애락하고 욕심을 내고 질투하는 그 마음이 곧 평상심이고 부처라는 것인가? 아니면 깊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곧 즉심이라고 하는 것인가?
이런 마음이 어찌 범부중생, 미물에게조차도 없다고 하리오.
그렇다면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옛 선사들의 화두를 분명하게 꿰뚫지 못하는가? 그저 조금 꿰뚫어서는 그저 동문서답을 짓고 이현령비현령하며 되는대로 내뱉고 적당히 옛 사람의 구절과 자신의 말을 뒤섞여서 자타를 어지럽게 할 뿐이다.  
자신을 기준으로 삼으면 틀림없이 옛 사람의 도를 땅속에 파묻게 된다. 반드시 옛 사람의 도를 따라서 스스로 더욱 옷깃을 여미여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즉심은 바로 마대사의 즉심이고 평상심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연후에 비로소 스스로에게 반문해볼 수 있다.
“나에게는 분명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작용이 있어서 가르침을 들으면 곧 수긍하는 바가 있는데, 어째서 저 옛 사람의 마음을 확철하게 통달하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마조의 즉심이라고 해야 하는가?
이것을 살피려면 먼저 육조대사의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고, 무주(無住)로 종(宗)을 삼고, 묘유(妙有)로 본(本)을 삼는다.(無念為宗, 無相為體, 無住為本)’고 한 것을 오래토록 참구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가운데에는 성문연각을 위한 가르침도 있고 보살을 위한 법문도 있고 부처와 조사가 마음마음으로 전한 법(法)도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 구절을 꿰뚫는다면 어찌 백천의 화두들을 풀어내지 못하리오.
마조대사는 일찍이 ‘즉심즉불(即心即佛)’을 말해서 오랫동안 당나라를 들썩거리게 하였다.
만약 마음이 곧 부처라고 했는데, 부처와 마음은 같다는 것인가? 다르다는 것인가? 만약 다르다고 한다면 부처를 파묻는 일이다. 만약 같다고 한다면 역대 조사들을 몹시도 욕되게 하는 일이다. 여래선과 조사선은 결국 같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만약 같다고 아는 견해를 짓는다면 그저 여래선을 조금 맛보았다고 할 수는 있겠다. 그렇다고 해도 어찌 화두를 밀밀하게 파헤칠 수 있을 것인가? 조사선을 깊이 꿰뚫어가는 길은 참으로 험난하다.
그렇기 때문에 옛 사람도 말하기를, ‘도를 말하기는 쉬워도 도를 이루기는 어렵다’라고 하였다.
무엇이 ‘도를 말하기를 쉽다’는 것인가? 이 구절이 매우 평상적이고 쉬는 구절처럼 보이지만 여래선과 조사선을 깊이 꿰뚫지 못해서는 결국 반쪽도 소화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지극한 도를 일상에서 들출 수 있어야 참으로 평상심을 아는 자라고 하겠다.  
만약 나 취산에게 즉심즉불이 결국 무슨 말인지를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조사의 뜻을 알면 곧 가르침의 뜻을 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반대로 가르침의 뜻을 알면 조사의 뜻을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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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모검

글: 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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