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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林, 이것이 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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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산 래선사가 수창 경선사에게 공부할 때 수창선사가 최후에 물었다.

“노바가 무슨 수단과 안목을 갖추었기에 갑자기 집을 불사르고 스님을 쫓아내었는가?”

“황금에 빛을 더하였습니다(黃金增色).”

하니 수창선사가 인가를 하고 법을 전하였다.

 

성철스님의 착어: 탁한 기름에 다시 젖은 심지를 꽂는다.

 

취산: 여기에서 성철스님은 ‘황금첨색(黃金增色)’이라고 한 뜻과 ‘탁한 기름을 다시 젖은 심지에 꽂는다’고 한 것을 같은 뜻으로 썼을까?

저 박산스님이 ‘황금첨색’이라고 한 것은 노파의 안목을 밝힌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서 다시 보자.  

 

하루는 등측(登廁)스님이 나무에 오르는 사람을 보고는 크게 깨닫고서 뜻을 수창(壽昌)선사에게 보였다.

수창이 물었다.

“그대는 요즘 어떠한가?”

“저 활로(活路)가 있습니다만 사람에게 알려주지 못하겠습니다.”

“어째서 사람에게 알려주지 못하는가?”

“모릅니다. 모릅니다.”

수창이 물었다.

“노파가 무슨 눈을 갖추었기에 곧 암자를 불사르고 스님을 쫓아냈는가?”

“황금에 색을 보탰습니다.”

一日登廁。睹登樹人大悟。趣見昌。昌問子近日何如。師曰。有箇活路。只是不許人知。昌曰。因甚不許人知。師曰。不知不知。昌問。婆子具什麼手眼。便燒庵趁僧去。師曰。黃金增色爾。

 

취산: 황금첨색(黃金增色)이라고 한 것은 노파를 긍정한 것인가? 긍정하지 않는 것인가?

성철스님이 ‘탁한 기름에 다시 젖은 심지를 꽂는다.’고 한 것은 나름대로 참으로 좋다. 그러나 이전의 코멘트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조산선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제방에서는 격칙(格則: 화두를 거론하다)을 잡는데, 어째서 일전어(一轉語)를 말해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의심을 없애게 해주지 않는가?”

운문이 곧 물었다.

“밀밀처(密密處)는 무엇 때문에 알지 못합니까?”

“그저 밀밀(密密)하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친근(親近)할 수 있겠습니까?”

“밀밀처(密密處)를 향해서 친근(親近)하지 마라.”

“밀밀처(密密處)를 향해서 친근(親近)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비로소 친근(親近)을 안다.”

“네네”

曹山示眾云。諸方盡把格則。何不與他道一轉語。教伊不疑去。雲門便問。密密處。為甚麼不知有。師云。只為密密。所以不知有。門云。此人如何親近。師云。莫向密密處親近。門云。不向密密處親近時如何。師云。始解親近。門云。諾諾。

 

여기에 대해서 묘희(대혜 종고)는 말했다.

“탁한 기름에 다시 젖은 심지를 꼽는다.”

妙喜云。濁油更著濕燈心。

 

취산: 탁한 기름에 다시 젖은 심지를 꼽음이여, 북두(北斗)에 몸을 감춘다.

이것은 앞에서 ‘황금첨색(黃金增色)’이라고 한 것과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노파를 알기는 쉬워도 암주를 알기는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밀밀처(密密處)’라고 하겠는가?

석상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석상의 밀밀처입니까?”

“무수쇄자(無鬚鎖子)를 양쪽으로 흔들어라.”

 

6. 현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은 이렇게 코멘트를 하였다.

 

“20년 동안이나 마구니를 시봉侍奉 했다면서 토굴을 불태워버렸겠는가? 산승이 보건대, 이 노파는 일등도인道人과 견주어서 호리毫釐만큼의 하자瑕疵가 없는, 참으로 훌륭한 도인 보살이시다.”

 

취산: 무수한 선객들이 이 화두를 거론했어도 제대로 꿰뚫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관음을 미륵으로 잘못 알고 쇠 쓰레받기를 다리미로 잘못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자 저마다의 풍류가 귀하다고 해도 반드시 옛 사람들의 구절에 비추어 탁마하고 점검해야만이 비로소 바른 선의 안목을 얻는다고 하겠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옛 사람들은 어떻게 코멘트하고 있는가?

 

공동 자는 말했다.

“대중이 말하기를, ‘암주는 아직 (작가가) 아니며 노파가 작가이다’라고 하는데, 이와 같이 거량해서는 그저 송곳의 날카로움만을 보았을 뿐이다. 노파는 암주의 수용처(受用處)를 알지 못하였고 암주는 노파의 작용처(作用處)를 알지 못하였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저) 한 쌍이 (서로를) 의심하며 덜렁거렸으니, 각자 스무 방망이를 때려야겠다. 어째서인가? 사암(獅巖: 사자바위)의 이 안에서는 상과 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崆峒慈云。眾中道菴主未在。婆子作家。恁麼舉揚只見錐頭利。殊不知婆子不知菴主受用處。菴主不知婆子作用處。一對訝郎當。各與二十棒。何故。獅巖者裏賞罰分明。

 

취산: 암주의 수용처, 노파의 작용처여, 한 사람은 대용은 알았어도 대기에 밝지 못하였고 한 사람은 대기에 밝았어도 대용을 알지 못하였다. 각자 반근을 얻었을 뿐이다. 어떤 자여야 참으로 취모검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용화 체는 말했다.

“저 노파가 비록 온몸이 손이고 눈이었어도 결국에는 노파선(老婆禪)일 뿐이다. 오직 저 스님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는데, 사자(使者)를 꺾어서 노파의 백천 기량이 일시에 와해빙소하였다.”

龍華體云。者婆子雖通身手眼。終是老婆禪。唯者僧入火無煙入水不溺。頓使者婆子百千伎倆一時冰消瓦解。

 

취산: 사자(使者)를 꺾음이여, 정면에서 부정하였다.

백천 기량이 일시에 와해빙소함이여, 칠화팔렬(七華八裂)이다.

 

노파소암의 화두는 흔히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노파의 부녀가 함께 계책을 꾸민 뜻이 결국 어디에 있었겠는가?

바로 암주의 ‘삼동에 찬 바위에 마른 나무가 기대었어도 따뜻한 온기가 없다’라고 한 구절에 있었다. 저 두 사람은 20년 동안 암주를 지켜봐왔다. 그렇지만 그저 한결같아서 앉아있는 모습이 목석같기도 하고 바위 같았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 다 탄 재와도 같았다.

저 무념무심이라는 글자를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견해를 짓고 경계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글자에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백장선사는 위산스님에게 재속에 불씨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였고 마조선사는 백장스님에게 들오리가 어디로 날아가는지를 물었다.

그렇다면 저 노파가 고목에 꽃을 이겨서 붙인 것은 저 백장선사, 마조선사의 물음과 같은가? 다른가? 이 화두를 꿰뚫어서는 틀림없이 ‘덕산탁발화’를 꿰뚫을 수 있으리라.

만약 나 취산에게 누가 저 노파와 암주의 경계가 어떠한지를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날이 차가우면 어떤 사람은 더욱 높이 오르고 어떤 사람은 더욱 깊이 들어간다.

 

끝으로 송을 하나 붙인다.

 

노파와 암주여

높아서는 낮아지기 어렵고

깊어서는 높아지기 어렵다.

고목에서 꽃을 찾고 흑산으로 향해서는 
서로 만나기 어려운데

참으로 몸을 돌릴 곳을 알아서는

한량없는 양단의 전쟁이 벌써 그쳤으리라.

 

2015. 02 22. 취산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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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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