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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林, 이것이 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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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보우에게 법을 전하다

 

한국에 임제종의 바른 안목이 전해진 것은 원나라 석옥청공(石屋靑空)화상에게서 고려 태고보우((太古普愚)에게 법을 전하는 것에서 비롯하였다. 당시에 태고스님은 돌아와서 고려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다.

선(禪)의 바른 안목을 살피는 일은 매우 치밀하고 정교하여서 설령 눈이 있어도 미끄러지기 쉽다.

오늘날 한국에 선의 바른 안목을 자처하는 자가 몹시도 드물다.

현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은 스스로 태고 보우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주창하고 있다. 참으로 그렇다면 어찌 기쁘고 춤출 일이 아니리오.

그러나 과연 그러한지는 치밀하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바른 안목을 거론함에 있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으며 부처도 또한 후려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선(禪)의 세계가 만약 명성과 군중에 연연했다면 어찌 한 법인들 세워질 수 있으리오.

 

진제스님은 무자년 동안거 동화사 12월 보름에 대중을 향해 이렇게 법문하였다.

 

---------------------------------------------

-중략-

 

그 당시 태고 보우스님이 석옥 청공 선사를 찾아가 친견하니, 선사께서 태고스님에게 우두 선사의 법문을 들어 물으셨습니다.

“우두스님에게 천동 천녀가 공양을 지어 올리고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어다 바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고?”

“부귀(富貴)는 만 사람이 부러워합니다.”

태고스님이 이렇게 답하니,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도신 선사를 친견한 후로, 천동 천녀들이 공양을 지어오지 않고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어오지 아니한 때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빈한(貧寒)하면 자식도 멀어집니다.”

태고스님이 이렇게 답하니, 다시 석옥 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우주 허공이 태고(太古) 앞에 생겼는가, 뒤에 생겼음인가?”

“태고로 좇아 다 이루어졌습니다.”

 

-중략-

-------------------------------------------------

 

취산: ‘빈한(貧寒)하면 자식도 멀어집니다.’라고 한다면 결국 저 우두스님에게 더 이상 새들이 꽃을 물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리라. 그래서는 저 우두스님을 반쯤 드러낼 뿐이다.

먼저 원문을 보자.

 

問牛頭未見四祖時 因甚百鳥啣花

曰富貴人皆仰

曰見後因甚百鳥啣花覓不得

曰淸貧子亦疎屋

又問 空劫已前 有太古耶 無太古耶

曰空生太古中

屋微笑云 佛法東矣

 

여기에서 문제는 ‘曰淸貧子亦疎屋’에 있다. 나라면 이렇게 번역하리라.

 

태고는 말했다.

“청빈자(淸貧子)라도 역시 옥(屋)에서 멀겠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육은 삼십육’을 말할 뿐 아니라 더욱 나아가 석옥 청공의 뜻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옛 사람은 말하기를 ‘안목이 스승과 같아서는 오히려 스승의 덕을 반감한다.’고 했다. 반드시 저 스승의 물음을 능가하는 안목을 보여야 비로소 전수를 감당할만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자를 청빈자(淸貧子)라고 할까?

무일법당정(無一法當情)이다.

무엇이 소옥(疎屋)인가?

소(疎)란 곧 ‘거칠다. 서툴다. 멀다. 드물다.’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곧 ‘옥(屋)에서 멀다’라고 번역하리라. 이는 곧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저 임제정맥의 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問 空劫已前 有太古耶 無太古耶

 

진제스님은 ‘공겁(空劫)’을 ‘우주허공’이라고 번역했는데, 공겁이란 곧 공겁시대를 일컫는다. 이는 곧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의 시대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무엇이 위음왕불 이전인가?

 

관음(觀音) 회하에 한 스님이 암두선사를 찾아와 뵙고는 손으로 왼쪽에 일원상을 그렸다. 또 오른쪽에 일원상을 그렸다. 또 다시 중심에 일원상을 그리고 있는데, 암두가 손으로 한 차례 발(撥: 다스리다)하였다.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암두가 곧 악! 하고 할을 하였다.

스님이 막 문을 밟고 나가려고 하는데, 암두가 부르며 물었다.

“그대는 홍주 관음(사)에서 왔는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방금 왼쪽의 원상은 어떠한가?”

“유구(有句)입니다.”

“오른쪽의 원상은 어떠한가?”

“무구(無句)입니다.”

“중간의 원상은 어떠한가?”

“유구도 아니고 무구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의 이러함은 또 어떠한가?”“마치 칼(刀)로 물을 베는 것과 같습니다.”

암두가 후려쳐서 쫓아냈다.

觀音會下一僧來參巖頭。以手左邊作一圓相。又右邊作一圓相。又中心作一圓相。欲成未成。頭以手一撥。僧無對。頭乃喝出。僧方跨門。頭卻喚迴問。汝是洪州觀音來麼。僧云。是。頭問。只如適來左邊圓相作麼生。僧曰。是有句。頭曰。右邊圓相[漸/耳]。僧曰。是無句。頭曰。中間圓相作麼生。僧曰。是不有不無句。頭曰。只如吾恁麼又如何。僧曰。如刀畫水。頭打趁出。

 

교학에 비추면 저 스님에게 훌륭한 점이 없다고 할 수 없는데, 어째서 차 한 잔 얻어 마시지 못하고 쫓겨났을까? 설령 유구(有句)도 아니고 무구(無句)도 아니라고 해도 어찌 암두선사를 감당할 수 있었으리오.

 

진제스님은 또한 이렇게 번역하였다.

“그러면 우주 허공이 태고(太古) 앞에 생겼는가, 뒤에 생겼음인가?”

“태고로 좇아 다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 큰 허물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해도 정밀하게 살피는 입장에서는 역시 원문을 참조하는 편이 낫다고 하겠다. 이것은 마치 우주허공이 태고에서 생겼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어떤 자가 그렇게 알아서는 그저 탁론을 지을 뿐이다.

태고의 견처에서 본다면 위음왕불 이전이라고 해도 어찌 손자뻘을 면하리오.

 

선(禪)의 안목은 치밀하고 정교하다. 십만 개의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물려서 큰 수레를 움직이는 것과 같다. 만약 하나라도 톱니바퀴가 어긋나면 결국에 요란하게 삐거덕거리며 기우뚱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을 참구하는데 있어서 첫 번째 관문은 번역의 문제이다. 번역에서부터 어긋나서는 결국에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만약 누구든 좋은 안목을 가졌다면 틀림없이 좋은 번역을 낼 것이다. 왜냐하면 선(禪)의 번역은 글자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학은 반드시 이런 번역을 의지해서 참구하고 살피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만약 번역의 작은 차이를 간과한다면 그는 결코 큰일을 해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석옥화상이 태고스님에게 물었다.

“우두가 사조를 아직 뵙기 이전에는 무엇 때문에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고 왔는가?”

“부귀한 사람(富貴人)은 모두가 우러러 봅니다.”

“뵙고 나서는 무엇 때문에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고 오지 않았는가?”

“청빈자(淸貧子)라도 옥(屋: 집)에서 멉니다.”

乃問牛頭未見四祖時 因甚百鳥啣花

曰富貴人皆仰

曰見後因甚百鳥啣花覓不得

曰淸貧子亦疎屋

 

또한 물었다.

“공겁(空劫)(시대) 이전에 태고(太古)가 있었는가? 태고(太古)가 없었는가?”

“공(空)이 태고(太古) 가운데에서 생겼습니다.”

석옥화상이 미소하며 말했다.

“불법이 동쪽으로 가는구나.”

又問 空劫已前 有太古耶 無太古耶

曰空生太古中

屋微笑云 佛法東矣

 

마침내 가사로 신(信)을 표하며 말했다.

“옷이지만 오늘 법이 영산(회상)에서부터 흘러서 지금에 전하였는데, 오늘 그대에게 부촉한다. 그대는 잘 간직하여서 끊어지지 않게 하라.”

주장자를 건네며 말하였다.

“이 늙은이가 평생을 써도 다하지 못했는데, 오늘 그대에게 주니 그대는 이것을 가지고 길에서 잘 해라.”

태고스님이 절을 하고 가사를 받으면서 말했다.

“지금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말후(末後: 나중)는 어떠합니까?”

석옥화상이 말했다.

“지혜가 스승을 능가하는 것을 천년이 흘러도 만나기 어렵다. 만약 그런 자를 만난다면 곧 그에게 주라. 오직 위로부터의 불조(佛祖)의 명맥이 끊이지 않는 것이 귀할 뿐이다.”

태고스님이 절을 올리고 하직을 하면서도 오히려 아쉬운 기색이 있었다.

석옥화상이 수십 걸음을 따라 나와서는 부르며 말했다.

“장노여, 나의 집안에는 본래 이별이 없다. 이별이라고 보지 마라. 만약 이별이니 이별이 아니니 한다면 곧 옳지 않다. 자, 자!”

태고스님은 네! 네! 하고는 물러났다.

遂以袈裟表信曰 衣雖今日 法自靈山 流傳至今 今附於汝 汝善護持 毋令斷絶拈柱杖囑云 是老僧平生用不盡的今日附於汝汝將這箇 善爲途路 師拜受 啓云卽今不問 末後如何 屋云智過於師 千載難逢 若遇箇者 卽當分付只貴從上佛祖命脈不斷耳 師拜辭而尙有眷眷之色 屋施從數十步 喚云長老 我家中本無別離 莫作別離看好若作別不別便不是 勗哉勗哉 師唯唯而退

 

취산 쓰다. 201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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