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古林, 이것이 禪이다~

조회 수 43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물을 뜨니 달이 손에 있다

 

무자년 동안거 동화사 월에 (한국조계종 종정) 진제스님은 이런 말을 하였다.

과거에 산승(山僧-眞際)의 스승이신 향곡(香谷) 선사께서 우두 선사의 법문을 들어 산승에게 물으셨습니다.

“우두스님에게 천동 천녀가 공양을 지어 올리고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어다 바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고?”

“삼삼(三三)은 구(九)입니다.”

“그러면 도신 선사를 친견한 후로, 천동 천녀들이 공양을 지어오지 않고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어오지 아니한 때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육육(六六)은 삼십육(三十六)입니다.”

 

시회대중(時會大衆) 여러분, 남전 선사, 태고 선사, 산승 이 세 분의 답처를 잘 가릴 줄 아는 눈을 갖추어야 염라대왕에게 잡혀감을 면하고 천상 인간의 진리의 스승이 될 것 입니다.

필경(畢竟)에 진리의 한마디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掬水(국수)에 月在手(월재수)하고

攏花(농화)에 香滿衣(향만의)로다.

물을 움켜쥐니 달은 손바닥에 있고,

꽃을 만지니 전신에 꽃향기가 가득함이로다.

 

취산:

참으로 육육은 삼십육이어서는 어찌 인간계, 천상계의 스승일 뿐이리오. 가히 불조(佛祖)의 스승이라고 하겠다.

한국의 진제스님이 화두에 매우 정성스럽다.

그렇다고 해도 어찌 밀밀하게 살펴보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설령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어오지 않았다고 해도 여기에는 천차만별의 살림살이가 있음을 살펴야 한다.

어째서 저 새들은 꽃을 물고오지 않았을까?

저마다 공양물을 받들어서 어제 왔던 자리로 왔지만 가히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보이지 않고 귀를 높이 세우고 들어도 들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디에서 그 자취를 더듬어서 공양을 올릴 것인가?

이 우두스님의 일화는 운거스님의 한 때와 매우 흡사하다.

 

과거 남전선사는 미륵하생경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물었다.

“미륵은 언제 하생하는가?”

“현재 천궁(天宮)에 계시는데, 미래에 오십니다.”

남전선사가 말했다.

“천상에도 미륵이 없고 지하에도 미륵이 없다.”

운거스님이 이것을 들어서 동산선사에게 물었다.

“천상에도 미륵이 없고 지하에도 미륵이 없다면 누가 (미륵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까?”

동산선사가 물음을 받자, 곧 선상이 진동하였다.

이에 말했다.

“도응 도려, 내가 운암선사에게 있으면서 일찍이 늙은이에게 묻자, 곧 화로가 진동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한 차례 질문을 받으니 곧 온몸에 땀이 흐른다.”

師謂雲居云。昔南泉。問講彌勒下生經僧云。彌勒甚麼時下生。僧云。現在天宮。當來下生。南泉云。天上無彌勒。地下無彌勒。雲居隨舉而問云。只如天上無彌勒。地下無彌勒。未審。誰與安名。師被問。直得禪床震動。乃云。膺闍黎。吾在雲巖。曾問老人。直得火爐震動。今日被子一問。直得通身汗流。

 

후에 운거 도응이 삼봉에 암자를 짓고서 머물었는데, 열흘이 되도록 나타나지를 않았다. 이에 동산선사가 찾아가서 물었다.

“그대는 요즘 어째서 (사시)재(齋)에 오지 않는가?”

운거스님이 말했다.

“매일 천신이 음식을 보내오기 때문입니다.”

동산선사가 말했다.

“나는 장차 그대가 그만한 사람이라고 말하려고 했더니, 오히려 그러한 견해를 짓고 있었구나. 그대는 해가 지면 찾아오라.”

운거스님이 느즈막에 찾아가니, 동산선사가 도응암주! 하고 불렀다.

운거스님이 네! 하고 대답하였다.

동산선사가 말했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라. (바로 이러할 때) 이것은 무엇인가?”

운거스님이 암자로 돌아와서 적연연좌(寂然宴坐)하였다.

천신이 이에 찾아도 끝내 찾지 못하고서 삼일을 그렇게 하더니 나타나지 않았다.

後雲居結菴於三峰。經旬不赴堂。師問。子近日何不赴齋。雲居云。每日自有天神送食。師云。我將謂汝是箇人。猶作這箇見解在。汝晚間來。雲居晚至。師召膺菴主。雲居應諾。師云。不思善不思惡。是甚麼。雲居回菴。寂然宴坐。天神自此竟尋不見。如是三日。乃絕。

 

만약 당시에 동산선사가 없었다면 저 운거스님은 어떠했을까? 백년이 되도록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스승이 곁에 있는 것이다.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어 오지 않아서는 이제 비로소 소를 타고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여기에는 한 물음이 또한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갔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수행하고 닦아가야 하는가?”

 

이제 소를 치며 지팡이를 들고서 남의 전답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며 바람을 쐬고 햇볕에 말리며 오래도록 굴리고 굴리고서도 한 참 뒤에야 비로소 이와 같은 한 구절을 뽑을 수 있는 것이다.

 

물을 (양손으로) 뜨니 달이 손에 있고

꽃을 가지고 노니 향기가 옷에 가득하다

掬水月在手

弄花香滿衣

 

국수(掬水)란 마치 달밤에 샘물을 뜨면 표주박에 달이 담기는 것처럼 양손으로 물을 뜨는 것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스님이 파릉화상에게 ‘조사의 뜻은 가르침의 뜻과 같습니까? 다릅니까?’하고 물으니, ‘닭은 추우면 지붕으로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 이 구절과 저 구절에는 선후가 있겠는가? 가려낼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은 안목이라고 하겠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노래해보겠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이다.

계단 앞에는 푸른 대나무이고

섬돌 아래에는 누런 국화이다.

 

취산 쓰다. 2015.06.21.

 

?

취모검

글: 취산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글쓴이 최근 수정일
24 어째서 禪의 구절을 저마다 다르게 번역하는가? 2017.05.31 취산 2017.06.21
23 법신을 꿰뚫은 구절에 대한 댸혜종고와 성철스님의 견해 차이 2016.07.21 취산 2017.06.21
22 화두는 하나의 덩어리이다 2015.08.27 취산 2015.08.28
21 산은 산 물은 물 2015.08.15 취산 2015.08.15
20 임제의 무위진인(無位眞人) 2015.07.26 취산 2015.07.26
19 성철스님의 염화미소 2015.07.22 취산 2015.07.26
18 진제스님의 염치없는 중 3 2015.07.18 취산 2017.09.05
17 협산의 경계 2015.07.12 취산 2015.07.14
» 물을 뜨니 달이 손에 있다 2015.06.21 취산 2015.06.29
15 향엄상수화 2 2015.05.29 취산 2015.06.04
14 조주의 차를 마시라 4 2015.05.28 취산 2016.02.15
13 용수불개전체현(龍袖拂開全體 2015.05.14 취산 2015.05.14
12 태고보우에게 법을 전하다 2015.05.10 취산 2015.05.10
11 노파소암에 대한 점검2 2015.04.20 운영자 2015.05.03
10 노파소암(老婆燒庵)에 대한 점검1 1 2015.04.20 운영자 2018.08.05
9 방거사, 대매를 만나다 2015.04.20 운영자 2015.04.25
8 즉심즉불 그리고 평상심2 2015.04.20 운영자 2015.04.25
7 즉심즉불 그리고 평상심1 2015.04.20 운영자 2015.04.25
6 성철스님의 말후구를 살피다 3 2015.04.20 운영자 2018.02.11
5 백장의 들오리2 2015.04.20 운영자 2015.04.2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