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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林, 이것이 禪이다~

2015.07.12 10:27

협산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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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산의 경계

 

한 스님이 협산에게 물었다.

“무엇이 협산의 경계입니까?”이에 협산은 말했다.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푸른 봉우리 뒤로 돌아가고

새는 꽃을 물고 푸른 절벽 앞에 떨어진다.”

夾山因僧問。如何是夾山境。

師曰。猿抱子歸青嶂後(裡)。鳥銜花落碧巖前。

 

※장(嶂) - 高險像屏障的山. 높고 험준하며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는 산.

 

후에 법안은 말했다.

“내가 20년을 그저 경계를 짓는 말로 알았다.”

後來法眼云。我二十年祇作境話會。

 

이 화두는 나에게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지리산에서 처음 토굴생활을 할 때에 이 구절을 써서 벽에 붙여놓았는데, 당시에는 그저 글자가 좋았을 뿐, 무얼 알아서 그랬을 것인가? 그러나 그러한 흉내는 시간이 흐를수록 엄청난 무게감을 갖게 되었다.

이 구절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성철스님의 ‘산은 산 물은 물’(지금의 본지풍광)이라는 책에서이다.

 

 

<본지풍광> 70칙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푸른 산으로 돌아가고,

새는 푸른 바위 앞에서 떨어진 꽃잎을 물고 오네.’

猿抱子歸青嶂後,鳥銜花落碧岩前。

 

이러한 번역은 사람을 몹시도 의심스럽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년 이상을 오직 이 번역을 의지해서 떠올려볼 뿐이었다.

이제 다시 거듭해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선의 번역은 그저 문법적인 이해로 가늠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저 옛 사람의 안목에 다가갈수록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에 혼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으며 반드시 여기에 온몸을 투신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어떤 때에는 앉고 어떤 때에는 구절을 참구한다'는 것을 몸소 밟아가는 일이라고 하겠다.

 

저 법안선사는 당시에 ‘경계를 짓는 말로 알았다’고 했는데, 무엇이 구체적으로 무슨 경계를 짓는다고 한 것일까?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이것은 마치 우두산 법융스님이 사조(四祖) 도신(道信)조사를 뵙기 이전과도 같다."

저 협산의 경계를 꿰뚫으려고 한다면 그전에 반드시 저 법안의 구절을 살펴야 하리라.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협산에 다가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푸른 봉우리 뒤로 돌아가고

猿抱子歸青嶂後

 

청장(青嶂)이란 곧 ‘병풍처럼 깎아지른 듯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일컫는다. 이것은 마치 ‘별유천지비인간이라고 한 것과 같은 세계라고 하겠다. 당시 법안스님이 이 구절을 20년 동안 의심하지 않았던 것은 부처의 교의(敎意)를 깊이 머금고 있어서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여 다시 무엇을 깨달았기에 20년 뒤에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코멘트하겠다.

같이 태어나고 같이 죽는다.

 

문제는 두 번째 구절이다.

 

새는 꽃을 물고 푸른 절벽 앞에 떨어진다.”

鳥銜花落碧巖前。

 

무엇을 벽암(碧巖)이라고 하는가?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푸른 바위이다. 그러나 저 벽암(碧巖)에는 많은 숨은 뜻이 있다.

당시에 협산선사는 저 벽암(碧巖)의 절벽 앞에 머물렀으며 나중에 설두선사가 송하고 원오선사가 평창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이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암(巖)’이라는 글자는 흔히 바위 정도로 보는데, 바위라면 얼마나 큰 바위를 말하는 것일까? 대략 가로세로 5미터 전후를 기대하기 쉬운데, 여기에서 말하는 벽암(碧巖)의 암(巖)은 바위산 전체를 일컫는다고 하겠다. 봉암사뒤의 희양산은 산이 그대로 거대한 바위절벽이다. 여기에서 벽암은 바로 저 바위절벽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새는 푸른 바위 앞에서 떨어진 꽃잎을 물고 오네(鳥銜花落碧岩前).’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성철스님에게 많은 갈등을 야기하기에 충분했으리라.

만약 이렇게 번역한다면 첫 번째 구절과 두 번째 구절은 서로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

여기에서 ‘함(銜)’ 자와 ‘락(落)’ 자를 잘 살펴야 한다.

 

선종정맥(禪宗正脈)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금릉(金陵) 우두산(牛頭山)의 제1세인 법융(法融)선사가 유서석실(幽栖石室)에 머물 때에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어오는 기이함이 있었다.金陵牛頭山第一世法融禪師。幽栖石室。有百鳥銜花之異。

 

여기에 보는 것처럼 ‘함화(銜花)’라고 하는 것은 새들이 꽃을 물고 와서 우두화상 앞에 꽃 공양을 올렸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법안스님도 20년 동안 경계를 짓는 말을 하는 줄로 알았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락벽암전(落碧岩前)‘이라고 했는데, 성철스님은 ’푸른 바위 앞에서 떨어진 꽃잎‘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렇게 번역하는데, 어찌 갈등이 없었으리오.

이미 진 꽃을 저 새는 무엇 때문에 입에 물었을까?

여기에는 마치 몸을 돌리는 소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발심의 뜻을 슬쩍 비추는 것 같기도 하다.

 

문수보살은 선재동자에게 말했다.

“산에 가서 약초를 구해오라.”

선재동자가 둘러보고서 빈손으로 돌아와서는 말했다.

“약초 아닌 것이 없습니다.”

 

수산 념선사에게 물었다.

“화상은 몇 번째 구절을 얻으셨습니까?”

“달이 진 삼경에 저자를 지나간다.”

問和尚第幾句薦得。答月落三更穿市過。

 

이 ‘락(落)’이라는 글자를 앞에 붙이면 떨어진 꽃이 되고 뒤에 붙이면 벽암의 절벽 앞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것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선의 안목이 절실하다.

안목이 없다면 어찌 옛 선사들의 구절을 한 글자인들 녹일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스님이 석상(石霜)에게 물었다.

“무엇이 화상의 심심처(深深處: 깊고 깊은 곳)입니까?”

“무수쇄자(無鬚鎖子: 수염 없는 자물통)을 양쪽으로 흔든다.”

石霜因僧問如何是和深深處。師曰無鬚鎖子兩頭搖。

 

여기에 대해서 투자 의청선사는 송하였다.

 

삼경에 달이 지고 두 산이 밝은데

옛 길은 아득하고 이끼가 가득 자랐다.

금 자물쇠를 흔들 때에 손으로 범하지 않아서는

푸른 파도 가운데를 옥(토끼)가 예사로이 간다. (투자 청)

三更月落兩山明。古道遙苔滿生。

金鎖搖時無手犯。碧波心玉常行。(投子)

 

두 산이 밝다는 것은 달이 진 곳이 환히 밝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보배산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니 집집마다 횃불을 밝혀놓은 것과 같다고 하겠다.

옛 길은 아득하고 이끼가 가득 자랐다는 것은 예전에 들어왔던 길이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서 머뭇거린다는 것이다.

손으로 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출귀몰한 솜씨로 금자물쇠를 열어제친다는 것이다.

마지막 구절에서는 ‘푸른 파도 가운데를 옥(토끼)가 예사로이 간다.’라고 했는데, 저 수산 념선사의 ‘달이 진 삼경에 저자를 지나간다.’고 한 것과 잘 어울린다.

 

저 '락벽암전(落碧岩前)‘을 번역하는데, 모든 갈등을 털어내려면 먼저 ’만법귀일 일귀하처‘의 화두를 오래도록 참구해야 하리라. 그런 연후에 비로소 석상화상의 심심처, 수산 념의 달이 진 삼경의 저자거리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한 스님이 협산에게 물었다.

“무엇이 협산의 경계입니까?”이에 협산은 말했다.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푸른 봉우리 뒤로 돌아가고

새는 꽃을 물고 푸른 절벽 앞에 떨어진다.”

夾山因僧問。如何是夾山境。

師曰。猿抱子歸青嶂後(裡)。鳥銜花落碧巖前。

 

후에 법안은 말했다.

“내가 20년을 그저 경계를 짓는 말로 알았다.”

後來法眼云。我二十年祇作境話會。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해 보겠다.

 

태고의 푸른 못에 공계(空界)의 달이 비치는데

두 세 차례 건져보고서야 비로소 안다네.

수미정상에서 금종을 치니

한 낮에 삼경의 소리를 듣는다.

 

 

취산 쓰다. 201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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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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