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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林, 이것이 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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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계종 현 종정이신 진제스님은 이런 법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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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大梅)의 즉심즉불(卽心卽佛)
- 중략 -
석일(昔日)에 한 납자(衲子)가 마조 선사를 참방(參訪)하여 묻기를,
如何是佛<여하시불>이닛고?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니, 마조 선사께서 대답하시길,
卽心卽佛<즉심즉불>이니라.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

하셨다. 그 납자는 언하(言下)에 곧 깨달아 대매산(大梅山)에 들어가서 삼십여 년간 머물고 있었는데, 회상(會上)을 열었다는 소식이 없으니 마조 선사가 수좌를 시켜서 대매산 법상(法常)스님한테 전하기를,
“마조 선사께서 전에는 ‘마음이 곧 부처라’ 하셨는데, 요즘엔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고 법문을 하십니다.”
라고 말하니, 대매 법상(大梅法常)스님이 말하기를,
“그 노장이 망령이 들었구나. 그래도 나는 ‘마음이 곧 부처다’ 하리라.”
하였다.
수좌가 돌아와서 마조 선사께 대매스님의 말을 전하니, 마조 선사께서
“대매산의 매실(梅實)이 익었구나.”
라고 인가(印可)를 하셨다.

중국 천하에 이 소문이 분분하니 하루는 방(龐) 거사가 대매 선사를 찾아가서 대뜸 묻기를,
“매실이 익었느냐?”
하니, 대매 선사께서 되물으셨다.
“어느 곳을 향해 입을 벌리려 하느냐?”
“백 번이나 씹어 부셔버렸다.”
“씨나 돌려다오.”

이렇게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문답을 전개하니, 과연 진리의 안목(眼目)을 갖춤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두 분의 문답처(問答處)에 우열(優劣)이 있느냐, 없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설령 우열이 있다 해도 삼십 방(三十棒)을 맞음이요,
우열이 없다 해도 삼십 방을 맞음이로다.
말후(末後)의 일구(一句)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馬面夜叉才稽首<마면야차재계수>하고
牛頭獄卒須擎拳<우두옥졸수경권>이로다.
말의 얼굴을 가진 야차(夜叉)는 머리를 조아리고
소의 머리를 가진 옥졸(獄卒)은 주먹을 불끈 쥠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정축년 춘안거 동화사 기본선원 개원식 상당법어(2541.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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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산: 저 대매스님은 일찍이 마대사를 참례하여 깨닫고서 곧장 대매산으로 들어가서 오래도록 은둔하였다. 저 대매스님은 무엇을 깨달았기에 ‘비심비불’이라고 해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을까?
마대사가 일찍이 반쪽을 꺼내어 보이고 나중에 다시 반쪽을 꺼내 보였다고 하겠는데, 어째서 대매스님은 ‘비심비불’의 구절을 전혀 돌아보지 않았을까? 얼른 보면 그저 고집불통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애초에 마대사를 참례하여 청매실을 얻었다면 다시 대매산에서 30년을 머물며 익히고 살을 발라내고 뼈를 드러내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저 대매스님은 조사심인(祖師心印)을 깊이 드러냈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서둘러 ‘인가(印可)’를 거론할 일이 전혀 아니다. 당시에 대매스님은 바다 깊은 곳으로 가고 있었다고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옛 사람도 평하기를, ‘대매 이 늙은이는 흡사 저 담장을 사이에 두고서 나무판자를 짊어지고 있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저 진제스님은 이것을 전혀 다르게 보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 ‘마조의 인가(印可)’를 얻었다고 말하고 다시 방거사와의 거량에서는 ‘말후(末後)의 일구(一句)’를 운운했으리라.    
마지막에서 ‘馬面夜叉才稽首, 牛頭獄卒須擎拳’라고 했는데, 참으로 좋은 구절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번역하기를, ‘말의 얼굴을 가진 야차(夜叉)는 머리를 조아리고 소의 머리를 가진 옥졸(獄卒)은 주먹을 불끈 쥠이로다.’라고 했는데, 어찌 모두에게 혼란스러움이 일지 않으리오. 어째서인가? 나라면 이렇게 번역하리라.

말얼굴 야차가 막 머리를 조아리고 소머리 옥졸이 곧 손으로 받들었다.
馬面夜叉纔稽首。牛頭獄卒便擎拳。

무슨 말인가? 흑암의 지옥에서 누구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대신력을 가진 말머리 야차와 소머리 옥졸이 지켰어도 어쩌지 못하는 자를 만났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권(擎拳)’이란 곧 ‘拱手, 致禮時的姿勢’의 의미가 있으며 곧 중국에서 두 주먹을 들어올려 맞잡고 예를 갖추는 자세를 일컫는다. 따라서 주먹을 불끈 쥐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어찌 여래선, 조사선은 보는 안목이 없다고 하리오. 그렇다고 해도 풀을 헤치고서 바람을 가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송나라 고봉 묘는 말했다.
“대중 가운데에서는 상량하며 모두가 말하기를, ‘마음이 본래 부처이다. 부처 밖에 마음이 없다. 때문에 마음이 곧 부처이다.’라고 하는데, 괴롭구나! 괴롭구나! 만약 작가가 (이러한) 견해를 즐겨서는 머지 않는 날에 무쇠방망이를 먹을 날이 있으리라. 이미 이와 같아서야 어찌 (옛 사람과) 합하리오.”
高峰妙云。眾中商量皆謂心本是佛。佛外無心。故云即心是佛。苦哉苦哉。若作者般見解。明朝後日喫鐵棒有分在。既然如是。合作麼生。

끝으로 이렇게 송하겠다.

즉심즉불(即心即佛) 비심비불(非心非佛)이여
조심(祖意)을 알면 교의(敎意)를 알고
빈주먹을 보여서는 허다한 사람이 속는다.
옛 사람에 친근해서는
결국에 사람마다의 집앞이 장안으로 통하리라.

2015.02.05. 취산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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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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